[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봉사를 했으니 인정을 해주면 되잖아요”
우리나라 종이팩 재활용률 13.7%(2022년 기준). 해가 갈수록 떨어지면서 10년 간 3분의 1 토막이 났다. 종이팩은 화장지와 휴지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어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자원이다.
종이팩을 재활용하려면 종이류와 분류가 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유제품 등 내용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잘 세척하고 납작하게 펴는 작업도 따라줘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주민들이 종이팩을 이처럼 버리지 않는다. 자발성과 선의에만 기대자니 분리배출이 잘 되지 않는다. 아파트 관리 인력이 종이팩 재활용을 위해 정리를 모두 떠맡자니 일이 다소 많다.
종이팩을 주민들이 합심해 정리하는 방법은 없을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박은자 관리소장이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묘안이 바로 ‘봉사 활동 인증’이다.
지난해 10월 충남 천안시 서북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는 ‘종이팩 수거 봉사자 모집’ 안내문이 붙었다. 모집 인원은 4명. 대상은 초등학생 이상의 입주민이라면 누구나. 봉사의 혜택은 보람. 그리고 취업과 입학 등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자원봉사 실적인증서다.
봉사자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다. 분리배출된 종이팩을 펼치고 씻어 말린 뒤 차곡차곡 쌓는 거다. 단순해 보이지만 700여 세대에서 보름 간 내놓은 종이팩들을 일일이 정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 10일에는 5명이 붙어 종이팩(1ℓ 301개·500㎖ 339개)과 멸균팩(1ℓ 86개·500㎖ 이하 870개) 1596개를 정리하는 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각 동별 수거와 준비하는 시간도 1시간 추가됐다.
지난해 12월 7일에는 종이팩과 멸균팩이 무려 2102개가 모였다. 그러나 봉사자 4명이 마음 잡고 정리하니 4시간이면 끝이 났다. 같은 달 19일에도 동별로 종이팩을 수거하고 종이팩과 멸균팩 726개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데 4명이서 3시간 걸렸다.
박은자 소장은 “한달에 모이는 종이팩이 10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모으고 정리한 종이팩들이 정말 재활용될 수 있도록 넘기는 데까지 관리소의 역할이다. 종이팩은 시설관리공단으로 보내 종량제 봉투로 교환한 뒤 주거 취약계층에 기부한다. 이 기부를 통해 봉사 실적이 인정되는 셈이다.
봉사자들도 꽤 수월하게 모였다. 자원봉사 활동 실적이 필요한 주민들이 있어서다. 4명으로 시작했는데 이달 들어 2명이 추가됐다. 초등학생 어린이도 나섰다.
아파트 주민들이 종이팩 쓰레기를 정리하는 봉사하기 시작하면서 분리배출과 재활용에 대한 인식과 관심도 커졌다는 게 아파트 측 설명이다.
자원봉사 실적 인정이라는 유인책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 아파트 단지의 종이팩들은 온전히 재활용될 수 있었다. 이외의 많은 공동 및 단독주택의 종이팩 분리배출 사정은 여의치 않다. 종이팩은 주민센터 등으로 직접 가져가는 거점 수거 방식으로만 버릴 수 있어서다.
박은자 관리소장은 “우리나라 주거 형태가 80%이상이 공동주택인 점을 감안하면 홍보와 교육, 봉사 인정 등으로 재활용률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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