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서울 도심을 빠져나가는 데 한 시간 걸리는 건 마찬가지에요”
경기 용인시에서 서울 중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홍재준(가명·28) 씨는 최근 도입 후 유예된 ‘노선별 버스 표지판 제도’를 두고 이같이 설명했다.
경기 수원시에서 출발하는 M5107번 광역버스를 타고 통근하는 직장인 김윤기(가명·29) 씨는 아예 통근 시간대를 피해 다닌다.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오후 9시가 넘으면 귀갓길에 오른다. 가장 붐비는 시간대를 피한 덕에 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20분 남짓 아꼈지만, 집에 도착하면 늘 밤 10시가 넘는다.
김씨는 “버스 정류장이 어디 있고, 줄을 어디 서느냐보다는 서울 도심에 차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푸념했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으로 대중교통 활성화가 떠오르고 있지만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은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버스 정류장 내 승하차 위치를 지정하는 작은 변화로도 일 평균 9000여 명의 승객들의 발이 묶이는 식이다.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려면 대중교통이 자가용보다 편리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이미 포화 상태인 대중교통의 이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가용 수요 억제를 비롯한 도로 전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서울시가 중구 ‘명동입구’ 정류장에 광역버스 노선별 승하차 위치를 지정했다가 버스가 꼬리를 물고 늘어서는 극심한 혼잡이 빚어졌다.
기존에 200m 가량 이어진 정류장 중 빈 곳에 버스가 정차하면 승객들이 눈치껏 타는 방식이었다면, 승하차 위치가 지정되면서 앞 버스가 서면 뒤 버스도 줄줄이 멈춰야 하는 문제가 튀어나온 셈이다.
연말연시에 불편이 부랴부랴 서울시는 계도 요원을 투입하고 정류장을 신설해 광역버스 노선을 분산 배치하는 등 대안을 내놨다.
뇌관은 남아 있다. 오는 15일부터 남산 1·3호 터널의 외곽 방향 혼잡통행료를 면제하 서울 도심 혼잡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이 경로는 경기도에서 출발하는 광역버스들이 을지로·광화문·서울역 등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외길이기 때문이다.
혼잡통행료를 면제하면 교통량이 늘어나는 건 예견된 수순이다. 지난해 3월 외곽 방향 통행료를 면제하는 실험에서 남산터널 이용 교통량은 약 5.2% 늘어나고 연결 도로의 속도는 5~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지난해 12월 열린 혼잡통행료 공청회에서 서울연구원은 도심 진입 방향에만 혼잡통행료를 부과할 때 3000원 이상의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양방향 통행료 면제 대비 교통 혼잡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외곽 방향 통행료를 걷지 않는 것으로 결론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교통 정책의 핵심은 자가용 이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는 데 있다. 교통 분야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의 90%가량이 도로, 즉 자동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에 따르면 자가용 이용자가 일주일에 하루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연간 탄소 469㎏를 감축할 수 있다. 이는 나무 71그루 심은 것과 같다.
대중교통 불편은 커지는 데 자가용 이용에 혜택이 늘어나는 상황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서울환경연합은 “코로나19로 서울시의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이 10% 가량 하락하고 그만큼 승용차 이용은 늘어났다”며 “서울시는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한 정책 대신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했다.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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