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황제펭귄이 멸종위기 준위협종이래요. 페트병에 이런 그림이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노력에 박수를 보내요.”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생수를 홍보하는 이 게시물을 최악의 그린워싱 사례로 꼽았다. 사라져가는 동물을 알리기 위해 디자인을 그려 넣었을 뿐, 바다에 버려지는 페트병 쓰레기로 이들이 피해를 받는다는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사라져가는 동물을 알리기 위해 멸종위기종 디자인을 라벨에 삽입했다는 설명만 있을 뿐,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페트병 쓰레기로 인해 해달, 바다표범, 펭귄과 같은 해양생물이 피해를 받는다는 정보가 누락됐다”며 “99% 이상 화석 원료로 만드는 플라스틱이 기후위기를 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29일 ‘소셜미디어로 침투한 대기업의 위장환경주의’보고서를 를 발표하고, 최근 1년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대기업의 게시물 10건 중 4건은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4월 1일~2023년 3월 31일 사이 운영 중인 대기업 계열사의 인스타그램 계정 399개를 시민 497명과 함께 조사한 결과다. 이 기간 올라온 게시물 총 6만21개 중 650개(약1%)가 그린워싱으로 나타났다.
기업별로 보면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인 399개 기업 중 165곳(40.35%)은 한 건 이상의 그린워싱 게시물을 올린 셈이다. 업종별로 보면 정유·화학·에너지업종이 올린 그린워싱 게시물이 80개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건설·기계·자재, 금융·보험, 쇼핑·유통, 레저·엔터, 식음료·생활용품 등이 50개가 넘는 그린워싱 게시물을 올렸다.
그린피스는 ▷제품 실제 성능이나 혁신 노력과 무관하게 푸른 숲이나 투명한 바다 등을 활용해 자연 이미지를 남용하는 경우 ▷친환경 및 탄소저감기술 등 녹색혁신을 과장해 강조하는 경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참여형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 3가지를 그린워싱의 전형적인 유형으로 봤다. 이는 유럽연합(EU) 기업의 소셜미디어 그린워싱 조사를 국내 사정에 맞게 적용한 기준이다.
650개의 그린워싱 게시물 중 자연 이미지를 남용하는 사례가 51.8%(유형 중복)로 가장 많았다. 동물들이 그려진 생수뿐 아니라 푸른 하늘과 야자수 속에 놓인 비행기, 숲속에 초록색 외관을 한 자동차 이미지 모두 그린워싱에 해당한다.
텀블러나 자전거 사용을 권하는 캠페인 역시 경계해야 한다. 이 같은 책임전가형 그린워싱도 40.0%를 차지했다. GS칼텍스의 텀블러 증정 이벤트나 에쓰-오일의 자전거 독려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린피스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유·화학기업으로서 자사의 책임과 노력을 명시하지 않은 채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비해 효과가 미미한 시민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기술을 앞세운 광고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녹색혁신을 과장하는 유형(18.2%)이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거나 탄소배출량을 기존보다 줄이는 기술을 보유했다며 환경오염이 아예 없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스토어 계정에서는 자사 에어컨이 친환경 냉매를 사용했다며 인증 마크를 강조하면서 ‘당사 자가마크’는 문구를 덧붙였다. 이 경우 정부에서 인증하는 환경마크로 오인될 수 있다.
그린피스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그린워싱에 소비자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주로 이미지와 영상 등을 통해 짧은 시간 유통·소비되는 소셜미디어 특성상 ‘진짜 친환경’인지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댓글을 달면 경품을 주는 등 참여형 이벤트로 소비자에게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넘길 뿐 아니라 그린워싱의 주체로 세운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다운 그린피스 데이터활동가는 “그린워싱이 단순 환경친화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그린워싱 방식이 교묘해질수록 소비자는 진짜 친환경기업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소비자들이 그린워싱을 판별해낼 수 있도록 기업이 기후위기 대응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활동가는 “조사 참여자들은 그린워싱이 만연하게 일어나는 이유로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정보 불균형을 꼽았다”며 “소비자들이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기후공시제도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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