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자연 (보호)에 돈을 투입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충분한 선례가 있고 실제로 벌어지고 있어요”(행동주의 투자자 제프 우벤)
약 5억 달러, 한화로 6700억원이 넘는 나랏빚 부담을 덜었다.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 가봉의 이야기다.
조건은 바다를 지키는 것. 가봉의 바다에는 혹등고래와 장수거북 등 120여 종의 멸종위기 해양 생물들이 살고 있다. 이를 지키는 데에 천문학적인 돈도 아낌없이 양보하는, 고마운 소식이다.
이처럼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보존에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큰 돈이 움직이는 실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가봉과 ‘환경-채무 스와프’(Debt for nature swap)를 체결했다. 가봉이 발행한 국채를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매입해 바다를 보호하는 ‘청색 본드(Blue Bond)’로 바꾸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가봉은 빚을 갚는 시한을 늦추고 이자는 낮췄다. 채권 만기가 15년으로 연장됐고 이자율은 6%로 떨어졌다.
대신 가봉은 같은 기간 해양 생태계 보호에 1억6300만달러(약22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가봉의 해양보호구역을 전체의 26%(2022년 2월 기준)에서 30%로 늘리는 게 목표다. 또 불법 조업 근절 등 어업 규제도 강화한다.
이런 맞교환을 가능케 한 건 ‘환경-채무 스와프’라는 개념이다. 부채를 은행이나 전문 투자자가 사들여 더 저렴한 대출로 바꿔 부담을 줄여주면 개발도상국은 탕감 받은 만큼 자연 보호에 이를 투자해 ‘윈윈’하는 방식이다.
아프리카에서 이같은 거래가 이뤄진 건 가봉이 처음이지만 중남미에서는 선례가 있었다. 2021~2022년 벨리즈와 바베이도스라는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의 채무는 환경 단체들이 나서서 해결했다.
특히 에콰도르는 지난 5월 16억달러(약 2조1200억원)의 최대 규모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기존 채무의 60%(10억 달러) 가량을 줄이는 효과다. 이를 두고 에콰도르 외무장관은 “생물다양성은 이제 ‘값진 화폐(valuable currency)’가 됐다”고까지 말했다.
역시 조건은 갈라파고스 제도 보존에 2041년까지 4억5000만달러(약 5964억원)을 쓰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무대로 거대거북, 바다이구아나, 다윈핀치 등 지구 상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종들이 살아가고 있다.
에콰도르에 이어 가봉까지 올해 잇따라 환경-채무 스와프가 체결되면서 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환경-채무 스와프가 떠오르고 있다. 나랏빚은 많지만 풍부한 자연을 지니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겠다는 약속이 실제로 지켜질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당장 가봉만 하더라도, 풍부한 해양 자원을 지니기는 했으나, 정부 수입의 3분의 1을 석유 산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환경단체 기후행동네트워크는 “환경-채무 스와프를 맺은 국가가 합의대로 생태계 보존에 투자할 재원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며 “부채가 많은 남반구나 개발도상국가에 부적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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