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선거는 쓰레기와 함께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전단지 및 책자형 공보물이 우리나라 모든 가정에 발송되고, 길거리 곳곳에 ‘OOO가 되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전부 일회용이다. 거의 모든 정치인이 친환경을 외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선거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에 기대 치러진다. 대안은 없을까.
얼마나 버려지길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제작된 현수막은 13만8192개에 달했다. 무게는 9220t이고, 이어 붙이면 1382㎞(10m라고 가정할 시)에 달한다. 이밖에도 선거 벽보 104만부, 선거 공보 6억4000만부가 제작됐다.
2017년 19대 대선 때는 이보다 더 많았다. 선거 벽보는 약 123만부, 선거 공보는 4억부가 만들어졌다. 선거 때마다 발생하는 종이가 6000~8000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선거 용품은 재활용되기도 힘들다. 흔히 현수막을 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폴리에스터 등 플라스틱 화학섬유 원단으로 제작된다. 매립해도 썩지 않고, 소각 과정에서는 다이옥신 등 발암물질과 미세 플라스틱을 대기로 배출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현수막 9220t 가운데 재활용된 것은 3093t(3093t)에 그친다. 선거 벽보 등 종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부분 비닐로 코팅돼 재활용되지 않고 매립·소각된다.
현수막, 선거 공보 등 공식적으로 제작 물량이 집계되는 것만 이 정도다. 후보들 번호와 이름이 적힌 점퍼나 모자, 어깨띠, 명함 등도 수만, 수십만장에 이른다.
안 만들면 안 돼?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후보자는 선거운동을 위한 책자·전단형 선거 공보를 선거구 내 세대수만큼 준비해 의무적으로 발송해야 한다. 제작 기준까지 정해져 있다. 예컨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는 16면 이내로,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12면 이내로 작성해야 한다. 선거 벽보 역시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동(洞)은 인구 500명당 1매, 읍은 250명에 1매 등 구체적 기준에 따라야 한다.
이 외에는 굳이 제작을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각 후보는 크기 10㎡의 현수막을 선거 유세 기간 선거구 내 읍·면·동 수의 2배 이내로 걸 수 있다. 하지만 걸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 또 후보자는 선거운동을 위해 선거공약 및 그 추진 계획을 적은 인쇄물을 선거구 내 세대수의 10%만큼 제작해 길거리 등에서 나눠줄 수 있지만, 이 역시 안 만들어도 된다. 예비후보자는 선거구 내 세대수의 10% 이내에서 인쇄물을 발송할 수 있는데 의무는 아니다.
변화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선거 공보물은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이 만들어졌다. 후보자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든 얼굴과 공약을 한 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을 터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환경을 위한 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선거 쓰레기부터 줄여보겠다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선거 운동을 ‘페이퍼리스(종이가 없는)’로 치르기 위한 대책을 고민 중이다. 각 세대에 대통령 선거 예비 홍보물 책자를 발송하는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자필 편지를 쓰는 모습을 담아 공개하겠다는 것. 종이 공보물을 온라인 상 영상 홍보물로 완전 대체하기로 한 것은 선거운동 사상 처음이라고 민주당 선대위는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 때에는 ‘현수막 안 거는 후보’가 나타나기도 했다. 부산시장 후보로 나섰던 손상우 미래당 후보는 현수막뿐만 아니라 일회용 공보물도 만들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직접 실천하고, 선거 뒤 발생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부터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거리 현수막을 이용한 홍보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투표소 안내 등 유권자의 선거권 행사에 꼭 필요한 현수막을 제외한, 일반적인 정책 홍보 현수막(2020년 기준 1만9500여매)은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전광판, 재활용 가능한 인쇄물, SNS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선거 현수막이나 공보물로 인한 쓰레기 문제는 사실 수년 전부터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변화가 더뎠던 것은, PC나 모바일 환경에 익숙지 않은 국민의 경우 공보물이 발송되지 않을 때 참정권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전 연령대가 QR코드 인증 등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면서, 보수적이던 선거 문화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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