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맥주병 하면 자연스레 갈색을 떠올린다. 최근 들어서는 녹색(하이트진로의 ‘테라’), 투명(오비맥주의 ‘카스’) 맥주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2019년 이후에야 나타난 모습이다.
맥주 업계가 갈색병을 고집해온 데에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맥주 특유의 향과 쓴맛을 내는 홉은 자외선에 오래 노출됐을 때 불쾌한 향을 내는 화학물질을 생성한다. 서양에서는 햇빛에 노출돼 변질된 맥주의 맛을 ‘스컹크 방귀 맛’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갈색병은 자외선 차단율이 높아 맛의 변질을 막을 수 있다. 녹색병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갈색 페트병은 재활용 골칫거리
유색 페트병 사용을 금지한 것은 환경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 2019년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해 유색 페트병의 사용을 원천 금지했다. 사이다(초록색), 막걸리(불투명) 등은 법이 시행된 2020년 12월 전까지 모두 시장에서 퇴출됐다. 우리가 아직 갈색 맥주 페트병을 볼 수 있는 것은 품질 보존을 이유로 5년의 유예기간을 받았기 때문이다.
페트병은 파쇄 과정을 거쳐 섬유나 시트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데, 투명할수록 재활용 가치가 크다. 반대로 유색 페트병은 솜, 부직포 등 저품질로 재활용되거나 매립·폐기된다. 맥주 페트병은 특히 골칫거리다. 맥주의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외부 산소를 차단하기 위해 페트와 페트 사이에 나일론이 삽입된 3중막 구조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맥주 페트병이 재활용하기 얼마나 어려운지는 페트병 관련 분담금만 봐도 알 수 있다. 페트병 등 포장재를 생산하는 기업은 폐기물 처리 업체로 전달될 일정의 분담금을 내야 하는데, 무색페트병의 경우 1㎏ 당 172원이 부과되는 반면 맥주 페트병과 같은 복합페트병에는 372원이 부과된다.
대용량 맥주를 유통할 수 있는 비(非) 페트병 포장재가 개발된다면 어떨까? 우선 소비자에겐 맥주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선택권이 유지된다. 기업에게도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이득이다. 피처 맥주는 전체 맥주 매출의 10%가량을 차지한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이 10%의 소비자는 피처 맥주병이 사라지면 일반 캔·병맥주를 찾는 대신 아예 대용량 수입 맥주(예컨대 5ℓ 케그 제품)로 눈을 돌려버릴 수도 있다.
주요 주류업계 중에선 롯데칠성음료가 가장 먼저 나섰다. 지난해 8월 투명 페트병 맥주 제품을 출시했다. 자외선에 취약하다는 투명 페트병의 원초적 한계는 불투명 라벨로 페트병 전체를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돌파했다.
하지만 해당 제품이 420㎖ 소용량이었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캔이나 병으로도 소화할 수 있는 소용량을 페트병으로 출시하면 오히려 플라스틱 사용량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페트병 몸체를 빈틈없이 두르고 있기 때문에 라벨 제거가 어렵기도 하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아직 대용량 페트병에 적용하기에는 라벨링 기술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라벨 등 부수 폐기물을 남기는 투명 페트병 대신 재활용이 쉬운 알루미늄 캔을 대형화하는 것이 실질적인 환경 보호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버드와이저(740㎖), 하이네켄(710㎖) 등 제품이 대용량 캔으로 유통되고 있다. 동원그룹의 자회사인 테크팩솔루션은 아예 맥주 페트병을 대체하기 위한 1ℓ 용량의 가벼운 유리 맥주병을 개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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