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명함 교환에서부터 시작됐다. 차이는 디테일에서 온다. 고 대표가 내미는 종이비누 명함, 빳빳한 코팅지의 기자 명함. 여기서부터 이미 내공이 다르다(인터뷰 후 종이비누 명함 구매를 검색해봤다. 이 기사를 보면 또 누군가 종이비누 명함을 검색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씩 바뀐다. 실제 비누로 쓸 수 있는 명함이다).
가장 궁금했던 건 바로 그 ‘동력’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환경을 생각한다. 분리배출도 신경 쓴다. 쓰레기도 줄여본다. 하지만, 오래 꾸준히 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얘기다. 고 대표는 ‘쓰레기 덕질’도 하고, 가게도 운영하고, 캠페인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망원시장 비닐봉투 없애기도 챙기고, 제로웨이스트샵 네트워크도 챙기고, 책도 쓰고…. 평생을 꾸준히, 쉼 없이 이러고 있다. 도대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고 대표의 답은 “재미”였다. “일하는 게 굉장히 즐겁고 재밌다”고 했다. “손님들이 와서 계속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려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 손님과 주인이 아닌, 지구를 아끼는 사람들로 만나는 공간. 그래서 이 공간에 있는 게, 일하는 게 재밌다고 했다.
껍데기가 없고, 프랜차이즈가 없고, 온라인이 없다
알맹상점의 모토는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다. 당연히 알맹상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은 포장이 없다. 손님들 역시 그걸 기대하고 온다. 그러다보니 포장을 하면 오히려 안 팔리는 일까지 벌어진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처음엔 무포장으로 물건을 대줄 수 있는 업체가 정말 적었어요. 스테인리스 빨대도 비닐 포장이 돼 있는 거에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판매했더니 정말 안 팔리는 거에요. 이젠 무포장으로 판매하는 업체도 많이 늘어나고 있죠.”
알맹상점 프랜차이즈도 없다. 알맹상점이 큰 인기를 끌면서 당연히 수없이 프랜차이즈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돈을 본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고 대표는 제로웨이스트와 리필스테이션 등의 활동에서 중요한 건 생활 공동체라고 본다. 동네 특성에 맞게, 그리고 걸어서 15~20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내에 제로웨이스트샵이 있어야 한다는 게 고 대표의 생각. 대형화, 프랜차이즈화는 그래서 알맹상점의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알맹상점은 아예 자료 정리까지 해놨다. 제로웨이스트샵을 열고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팁이나 노하우 등이다. 프랜차이즈라면 컨설팅에 해당되는 영역. 잠재적 경쟁사에 영업비법을 친절히 정리까지 해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전국에 제로웨이스트샵은 급증세다. 전국 제로웨이스트샵 모임인 도모도모에 속한 가게만 150여곳. 알맹상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제로웨이스트 가게 수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프랜차이즈를 했다면 이 중 상당수는 ‘알맹상점 00점’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전국 제로웨이스트 가게는 이름부터 판매품목까지 정말 다채롭다.
알맹상점은 온라인이 없다. 심지어 코로나 사태에서도 고집스레 오프라인 판매만 고집 중이다. 누구나 온라인 판매가 대세란 건 안다. 알맹상점이 팔고자 하는 건 사실 물건이 아니다. 경험, 문화, 인식 그 어딘가에 있다. 제로웨이스트란 화두를 두고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실천을 공유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알맹상점은 고집스레 대면만 유지하고 있다.
생태계가 있고, 구독경제가 있고, 사람이 있다
알맹상점엔 생태계가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고 대표는 말했다. “이젠 생산단계부터 무포장으로 판매해주겠다는 업체가 늘고 있죠. 무포장으로 상품이 파손되더라도 반품 요청을 안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알맹상점을 찾는 손님도 그런 건 문제를 삼지 않고요. 실리콘 제품 등은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잘 묻는데, 이를 이해하고 구매해주는 식이죠. 이를 막고자 포장을 하면 오히려 안 사가니까요.”
생산부터 판매, 소비자까지 모두 신뢰와 양해, 이해를 바탕으로 구성된 생태계다.
알맹상점엔 요즘 가장 ‘핫’한 ‘구독경제’가 있다. 알맹상점을 방문하는 이들 대부분은 가게에 오래 머물다 간다. 고 대표는 “슬로우 비즈니스의 끝판왕”이라고 표현했다. 상품 설명을 듣고, 무게를 측정하고, 리필을 해가고, 다시 빈 통을 들고 오고. 충성 고객의 재방문을 끊임없이 유도하는 효과다. 단순히 상품만 파는 게 아니라 제로웨이스트 체험이나 활동 소개, 제안 등의 과정도 공유된다. 이는 또 다시 제로웨이스트샵을 찾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다. 알맹상점 자체가 고 대표 외에 3인의 공동대표 체제다. 고 대표는 “가게를 운영해보니 사장은 참 외로운 직업이더라”며 “3명이서 외로움을 같이 나눌 수 있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없이 오프라인으로만 매장을 운영하는 것도 결국 이유는 ‘사람’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넘어 삶의 방식을 교감하는 공간으로 알맹상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경영철학. 그 기저엔 사람이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신년 소망을 물었다. 곧바로 “쓰레기에 진심인 정치인을 뽑는 선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알맹상점이 위치한 마포구엔 “종이팩 재활용을 책임질 공약을 내 건 후보자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정말 ‘쓰레기덕후’스러운 새해 소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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