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경쟁력이 곧 기업 경쟁력인 시대
유명무실 정부 정책을 민간이 대체
에너지 이념논쟁 지속시 대기업들 짐쌀 것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기후위기는 환경 문제를 넘어 경제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탈(脫) 탄소 경제’를 중심으로 국제 무역규범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 산업 전체가 도약과 나락의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61)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로 인한 세계사적인 부(富)의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경제학의 렌즈로 기후위기를 들여다 본 국내 최고 권위의 환경경제학자다. 그는 소비자와 생산자로 이뤄진 기존 경제모형에 ‘자연환경’이라는 제3의 주체를 포함시켜 환경과 경제가 포함된 통합적인 접근으로 연구를 해왔다. 물론 기업은 그를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나 홍 교수는 “30년 가까이 환경경제학자로 활동하면서 최근 3년간 기업 관계자들과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말한다.
홍 교수는 자본주의가 ‘기후’를 중심으로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경쟁력이 기업 경쟁력이자 국가 경쟁력인 시대라는 의미다. 특히 그는 소극적인 기후정책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한 정부의 역할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시장이 일부 대체하고 있는 현상을 의미심장하게 보고 있다.
그는 “그동안 기업의 자율에 맡겨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규제화’되고 있다”며 “그동안 기업이 투자자에 초점을 맞춰 자발적으로 ESG 대응을 해왔다면, 이제는 국가 별로 규제화되는 ESG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정치권이 해묵은 에너지 이념 논쟁에만 갇혀 있으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하는 대기업은 한국을 조용히 떠날 채비를 할 수밖에 없다”며 “기후경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에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고, 결국에는 일자리를 비롯한 한국 경제를 초토화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2022년 9월 벌어진 ‘사건’이 대표적인 방증이다. 국내 전력 사용량 1위인 삼성전자가 결국 필요한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100’ 동참을 선언한 것이다.
앞서 지난 2018년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은 RE100 가입을 선언했다. 203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는 애플은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공급망 기업들에게도 이를 요구했다. 애플에 반도체를 납품하는 주요 협력사가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가 RE100을 제때 충족하지 못하면 애플은 2020년 이미 RE100에 가입한 대만의 TSMC로 거래처를 옮길 수도 있다. 현재 대만은 거대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홍 교수는 “2020년대는 탈탄소 국제 무역규범이 완전히 정착되는 10년”이라며 “한국에서 RE100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해외 기업들의 한국 내 투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100이 민간과 시장 주도로 이뤄지는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라면, 유럽연합(EU)이 오는 2026년부터 본격 도입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국가 주도로 이뤄지는 강력한 환경 무역규제 정책이다. CBAM은 탄소 감축 노력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국가의 기업을 상대로 물건을 수입할 때마다 세금을 매기겠다는 제도다. 전통적인 국제무역 질서와 규범을 넘어선 파격적인 ‘뉴노멀’이다.
홍 교수는 “CBAM이 세계무역기구(WTO)가 지향하는 자유무역 규범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탄소 배출 때문에 우리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정당성으로 실효성 높은 조치로 인정될 소지가 높다”며 “유럽연합이 WTO 무역규범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CBAM 전격 시행을 자신하는 속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인도와 같은 개도국에 대해서는 일부 유예해 줄 수도 있지만, 한국의 경우 그럴 가능성은 0%”라고 꼬집었다. 세계 경제의 탄소중립에 대한 압박은 한국을 겨냥한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한국은 탄소경제를 통해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대표적인 국가”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이 재생에너지를 주요 발전원으로 가져가지 않으면 탈탄소 경제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날씨가 재생에너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오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위 33~55도에 위치한 한국은 북위 48~55도에 있는 독일보다 태양광 발전에 유리하다. 연평균 일사량(1459kWh/㎡)이 독일(1056kWh/㎡)보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양광을 포함한 독일의 재생에너지 비중(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은 2020년 현재 18.6%로, 한국(3.6%)보다 5배 이상 많다.
홍 교수는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에는 (독일보다) 우리나라의 여건이 훨씬 좋은 것이 사실”이라며 “산이 많고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가 육상 풍력과 해상 풍력을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홍 교수는 내달 22일 서울 반포 세빛섬 가빛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제4회 ‘H.eco포럼’(헤럴드환경포럼)에 연사와 패널로 참여, 넷 제로(Net Zero·탄소 중립)를 위한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세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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