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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장 매출, ‘이것’ 도입하면 20억→32억”…물 관리의 위력 [지구, 뭐래?]
202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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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인천과 제주도 시민이라면 ‘깔따구’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깔따구는 지난 2020년, 인천 서구와 제주도 서귀포시 일부 지역 수돗물에서 발견된 유충의 이름이다. 당시 중견 가전 업체들의 샤워기 필터 매출이 평상시보다 10배 가까이 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깔따구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수 년 전부터 개발해 온 스타트업이 있다. 양식장, 상수도 처리시설 등에 설치될 여과장치(필터) 개발 업체 에이런이 그 주인공이다.

 

에이런은 포스코, SK그룹 등 굴지의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냈는데, 이는 에이런의 기술력이 단순히 수(水)처리 영역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에이런의 필터를 활용하는 양식업자는 전기 사용량을 80% 가까이 줄일 수 있다.

 

에이런을 설립한 오순봉 대표는 “먹을 물이나 먹거리를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를 직접 만나 수처리 기술의 잠재력을 엿봤다.

 

-에이런은 주목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먼저 바다를 예로 들어볼게요. 바다와 접한 양식장은 바닷물을 끌어와 물고기를 키우고, 또 양식장 내 물은 바다로 내보내죠. 이걸 ‘유수식 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해양 오염 때문에 최근 바닷물에선 미세 플라스틱이나 유해충이 많이 발견돼요. 양식장 물은 또 어떤가요. 물고기들이 먹고 남은 사료 찌꺼기와 배설물, 바이러스들이 쌓여있죠. 바닷물을 양식장으로 끌어올 때, 또 양식장 물을 바다로 내보낼 때 제대로 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실정이에요. 더러운 물끼리의 악순환이죠.

 

어떤 분들은 내보낸 더러운 물이 썰물 밀물로 인해 멀리 사라지겠거니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태풍이 오지 않는 한, 더러운 물은 양식장 인근에서 계속 돕니다. 그걸 다시 끌어와 양식을 하니 물고기들은 자꾸 죽어나갑니다. 그러면 항생제는 점점 더 많이 투입해야 하고, 깨끗한 물을 새로 넣어줘야 하는 부담도 더 커지는 거고요.

 

“옛날엔 새로운 물을 끌어오는 걸 열 번 정도만 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30~50회전은 시켜야 해요. 옛날만큼만 회전시켜서는 물이 정화가 안 되고, 물고기가 계속 죽어나가니까요.”

 

-물을 회전시키는 과정에서 전기를 엄청나게 쓸 것 같은데요.

 

“어떤 양식업자는 전기세가 한 달에 3000만~4000만원이 나온다고 해요. 근데, 그마저도 먹거리를 생산하는 1차산업 종사자라 엄청난 할인 혜택을 받은 거예요. 일반 가정이 전기를 그만큼 쓰면 1억원은 나올 겁니다. 한국전력공사 입장에선, 애초에 양식장에는 전기를 공급 안 하는 게 이익일 정도로요.”

 

그래서 에이런은 물을 30~50회 회전시키면서 막대한 전기를 쓰는 대신, 해충과 미세 플라스틱을 효율적으로 걸러내는 ‘필터’를 설치하자는 해답을 내놨다. 필터가 제 역할을 해주기만 한다면, 연간 수억원에 달하는 전기세를 아끼는 동시에 항생제를 적게 쓰고도 어류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동시에 양식 업자의 소득을 높이는 일석이조다.

 

-어류의 생존율이 많이 낮은 상황인가요?

 

“그렇게 많은 전기와 물을 써도, 물고기 100마리 중에 70마리가 죽어요. 통상 양식장의 한 해 매출이 20억원 정도인데, 생존율을 10%만 올린다고 해도 2억원의 추가 매출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정부도 단순히 전기세를 할인해줄 게 아니라, 왜 양식업의 효율이 낮은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이런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그는 특히 기술력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삼성전자 공채 1기 출신으로, 10년 넘게 반도체 엔지니어로 근무한 뒤 1992년에는 반도체 장비 전문회사 아토를 창립해 연매출 1000억원의 코스닥 상장사로 키워내기도 했다. 에이런은 오 대표가 세 번째로 창업한 회사다.

 

“마지막 사업은 환경 분야에서 펼쳐보고 싶었어요. 수처리 분야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6번째 목표(‘모두를 위한 물과 위생시설’)일 정도로 중요한 영역인데, 그 비용이 비싸 기업들도 고객들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더라고요. 에너지 사용량과 사업자의 비용을 모두 줄여주는 기술을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유수식 양식이 한두 해 이어져 온 게 아닐 텐데.. 양식업자들이 필터를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기존에도 양식장 필터가 개발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금방 막혀버리는 게 문제였어요. 30분~1시간 가동하면 막혀버리거든요. 필터를 관리하거나 교체하면서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양식업자들이 잘 안 쓰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유입되는 미세 플라스틱이나 해충들을 양력과 초음파를 통해 물과 분리해서 내보내요. 물이랑 각종 입자가 한꺼번에 필터를 통과(전량 여과 방식)하는 게 아니라, 여과될 수 있는 입자와 물이 각각 따로 필터를 통과(순환 여과 방식)하는 거죠. 물론 순환 여과 방식의 필터도 막히긴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비행기가 뜨는 양력의 원리와 초음파를 이용해 효율을 더 개선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희 제품은 다른 필터 시스템에 비해 전기 사용량을 70~80% 줄일 수 있고, 365일 가동해도 막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 이름이 ‘에이런(Arun)’이에요. ‘막히지 않는다’는 뜻의 ‘올웨이즈 러닝(always running)’을 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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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장 외에 에이런의 고객은 또 어디가 있나요.

 

“상수 처리 시장도 보고 있습니다. 자동차 타이어가 마모되면서 날리는 미세 플라스틱이나 각 가정에서 건조기를 돌리면서 공기 중으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 비가 오면 이런 것들이 전부 하천으로 흘러들어가요. 또 팔당댐 주변으로 하수 처리장이나 농약 뿌릴 논밭이 잔뜩 포진해 있죠.

 

즉, 걸러낸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취수원이 여러 방식으로 오염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전국의 모든 하천 둘레에 필터를 설치할 수는 없잖아요. 정수할 물 자체가 더럽다 보니, 상수도에서 깔따구 유충같은 게 나오는 겁니다.

 

하천 물을 먹을 수 있게 정수하는 곳이 전국에 490곳이 있어요. 여기에 저희 제품이 활용될 수 있도록 시간당 3000t 수준을 처리하는 필터를 개발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 개발된 제품은 시간당 100t 제품인데, 필드 테스트를 거쳐 점차 키워나가려 합니다. 상수 외에도, 수처리가 수반돼야 하는 해수 담수화나 선박 평형수 시장 쪽으로도 진출할 수 있을 거예요.”

 

-환경 문제와 별개로. 고객 입장에서 에이런의 기술력은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전기 사용량을 기존 시스템 대비 8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연매출 20억원을 기록하는 양식장을 예로 들면, 우선 매달 3000만원씩 나가는 전기세 부문에서 연간 2억원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여기에 물고기의 생존율을 높임으로써 매출도 올라가죠. 50%를 올리면 10억원을 더 벌게 됩니다. 합쳐서, 순이익과 매출이 12억원 늘어나는 거예요.

 

저희 제품의 가격은 시간당 300~500t 처리할 수 있는 필터를 기준으로 6~7억원 수준인데, 6개월이면 투자비용을 회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품이 정부 조달 상품으로 등록돼 지원금이 나오면, 어가의 부담을 훨씬 더 줄어들 거고요.”

 

환경에 기여하는 동시에 어민들의 소득까지 증대시킬 수 있는 에이런의 가능성을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알아봤다. 지난 2018년, 에이런이 포스코의 스타트업 성장 프로그램인 ‘IMP(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에서 최우수 성적을 내자마자 포스코는 2억원의 시드 자금을 투자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의 소셜벤처 육성 사업에서 성장 지원금을 받았고, SKC와는 공동기술개발 협약을 맺기도 했다. 임팩트 엑셀러레이터인 임팩트스퀘어도 3억원을 투자해 에이런의 기술력을 주목하고 있다.

 

-제품 개발이나 상용화는 어느 단계까지 이뤄졌나요?

 

“지난해 8월부터 제주도 갯마을 양식장에서 시간당 30t을 처리할 수 있는 소규모 장비로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아직은 공정 표준을 잡아가고 있는 중으로, 현재 마무리 단계예요.

 

앞으로 투자 유치가 잘 마무리되고 실증의 규모를 키운 뒤에는 해외 진출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실제 2019년에는 베트남 정부, 판매를 담당할 미국 업체, 그리고 저희까지 세 주체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요. 최근에는 멕시코 쪽에서 14만명분에 대한 담수화 설비 전처리 기술에 대한 문의가 오기도 했습니다.”

 

오 대표는 우리 정부, 산업계가 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기업이나 소비자나, 마시는 물에 대한 눈높이는 여간 깐깐한 게 아니다. 하지만 물의 오염을 막거나, 혹은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기술에 대해서는 ‘누군가, 언젠가 만들어지겠지’ 하며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게 오 대표의 생각이다.

 

“세계 최대 수처리 기업인 프랑스의 베올리아그룹은 매출이 수십조원에 달해요. 그런데도 시장이 더 커져야 한다고 말하죠. 여기에 비하면, 수처리에 대한 한국 정부나 국내 산업계의 관심은 크게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어렵긴 하지만, 계속 도전해야죠. 그래야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수처리 기술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human@heraldcorp.com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20524000901&ACE_SEAR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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