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여기 라면 냄비까지 그대로 있네요”
제주 한 바닷속에서 발견된 라면냄비. 언뜻 봐도 음식물까지 그대로 담긴 채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상을 알고 보면, 라면냄비는 양호한 수준. 녹슨 식칼과 폐타이어, 배터리. 도저히 바닷속에 있을 거라 상상할 수 없는 쓰레기들이다.
물 밖에서 바라보면 그저 아름다운 바다. 대부분의 이들은 눈에 담기는 푸르름에 감탄할 뿐, 발도 채 닿지 않는 짙은 색의 바닷속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굳이 시커먼 바닷속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도 있다. 매번 불편한 광경을 마주하고, 쓰레기를 주워내는 사람들. 뚜렷한 보상도 끝맺음도 없는 일이다.
올해 10살이 된 제주 시민 조비비안 양도 이들 중 한 명. 성인 손바닥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고사리손으로 바닷속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지도 2년이 흘렀다. 이제는 어엿한 ‘베테랑’이다.
30도가 넘는 뙤약볕의 제주 바다, 한참을 물속에 머물다 뭍으로 나온 조 양에게 물었다. 굳이 바닷속에서 쓰레기를 줍는 이유가 있냐고. 빨개진 얼굴의 조 양이 수줍게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순수함에 귀 기울이던 어른들 모두가 소리 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한편에는, 어른들이 가진 부끄러움도 묻어 있었다.
지난달 30일 제주 김녕항, 환경 전문 공익재단 환경재단이 진행하는 ‘함께쓰담’ 캠페인 현장을 찾았다. 지구쓰담의 일환으로 전국 환경 정화 단체를 발굴하고, 활동 기반을 강화하는 캠페인이다. 이날은 제주 지역 단체 ‘혼디’와 제주해양구조대 소속 약 30여명이 제주 바다를 위해 모였다.
조 양을 포함해 일부 사람들이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동안, 다른 한쪽에는 갈퀴를 들고 있는 고등학생 허민혁(18) 군이 눈에 띄었다. 오늘 맡은 일은 기후변화로 인해 해안가에 대규모 발생한 ‘파래’를 제거하는 것.
그대로 놔두면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벌레까지 꼬여 제주 바다의 골칫거리. 하지만 온전한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방파제 설치로 인한 해수 흐름 저하, 고수온 현상 등 인간활동의 영향으로 발생한 일종의 ‘부작용’이다.
피할 그늘도 없는 바닷가, 허 군은 2시간이 넘게 묵묵히 바다 위 파래를 긁어 모으고 있었다. 제주 성산고등학교 해양과에 재학 중인 허 군은 내년 졸업 이후 삼등 항해사가 돼, 먼바다로 1년 6개월의 항해를 떠날 예정이다.
허 군은 “여름이면 수영도 하고, 가끔 가족·친척들 배를 타고 나가 낚시하는 게 바다에서의 일상”이라며 “가끔 바다가 무섭기도 하지만,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곳”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자신을 품어준 제주 바다를 떠나, 더 넓은 바다로의 여정을 앞둔 허 군. 흔한 스펙 쌓기 등 특별한 목적도 없이, 홀로 봉사에 참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기억하는 제주 바다가 앞으로도 그 자리에 계속 있어 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이날 김녕항을 찾은 시민 단체 ‘혼디’의 일원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제주에 살고 있지만, 제주 바다에 대한 소중함을 간직한 사람들. 빠르게 변하는 세상만큼, 점차 달라지고 있는 제주 바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혼디는 ‘함께, 같이’의 제주어로, 많은 시민 참여자와 함께 제주 바다 곳곳을 정화하는 단체다. 해양쓰레기 수거뿐 아니라 수거량을 기록해 제주해양쓰레기 데이터를 쌓고 있다. 단체에서 활동하는 시민의 수는 약 170명으로, 폐현수막 마대를 황용해 수거하고 있다.
이날 혼디와 같이 활동에 참여한 제주해양구조대의 수거 작업도 눈에 띄었다. 망설임 없이 김녕 바닷속으로 들어간 잠수대원들이 찾아낸 것은 폐타이어와 배터리, 녹슨 식칼과 밧줄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폐어선의 잔해까지 발견해, 물 밖으로 끌어 올리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들은 해양 수색, 구조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바닷속으로 출동하는 대원들로 구성돼 있다. 무거운 장비를 메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 페그물과 로프 수거 활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장비를 갖추고 이동하는 것은 물론, 식사를 해결하는 것까지 대부분을 자비로 해결한다.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듯, 바다에 들어가 쓰레기를 주워내는 사람들. 바다를 지킨다는 책임감이 유일한 원동력이다.
해양 쓰레기는 바다를 더럽히는 데 이어 바다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물질하던 해녀가 폐그물에 감기는 일도 실제 벌어지는 흔한 사례다. 손경국 제주해양구조대 사무국장은 “모두가 안전히 바다를 이용하도록 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쓰레기 문제는 비단 제주 바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0만톤 안팎의 해양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에 쌓인 쓰레기는 해양생태계는 물론 어업, 관광 등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
이에 환경재단은 전국 환경 정화 단체와 함께 해양·도심·산 등 다양한 생활권에서 정화 활동을 확대하는 시민 참여형 환경 캠페인 ‘함께쓰담’을 오는 7월까지 진행한다. 환경재단은 2020년부터 해양쓰레기 이슈 확대 및 활동 단체 지원을 위해 지구쓰담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다.
참여 단체는 개별 활동 5회 이상, 지역 간 연합플로깅 1회 이상을 진행하며 월 2회 이상 정기적으로 활동이 가능한 단체를 중심으로 선발했으며, 올해는 총 14개 단체가 선정됐다. 이같은 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수거한 쓰레기만 총 222톤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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