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에어컨 없이는 못 살겠는데...’
우리나라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98%.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반을 가진 탓도 있지만, 에어컨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의 여름을 매년 보내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초여름부터 4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에어컨 보급률이 20%대에 머무르는 지역이 있다. 바로 서유럽 ‘프랑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필요 없었기 때문. 하지만 기후변화는 유럽의 여름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놓고 있다.
이번 5·6월, 아직 여름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더위는 그야말로 ‘역대급’ 수준. 40도를 넘나드는 기온, 체감 기온은 50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겪으며 일상생활이 멈추고 있다.
흔히 유럽의 여름은 우리나라와 달리 건조하기 때문에, 햇빛만 피하면 견딜 만하다는 얘기가 있다. 이 또한 일부 사실이다. 하지만 40도가 넘는 더위라면, 얘기는 다르다.
실제 때아닌 더위에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등교가 취소되거나 야외 행사가 중지되는 등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유독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이상 고온’ 현상. 문제는 이같은 기온 상승이 가끔 나타나는 게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추세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23일 프랑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전국 평균 기온 지표(주야간 기온 평균)는 29.2도를 기록해 1947년 이후 기록된 가장 더운 날 중 3위를 차지했다. 이날 평균 기온 지표는 또 역대 6월 최고 기록으로, 지난해 6월 30일에 세웠던 기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18일부터 거센 강도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부터는 일부 지역에서 40도가 넘는 폭염이 나타났고, 수도인 파리 또한 이날 최고기온 39~40도 수준으로 폭염이 정점에 오른 상황이다.
문제는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것. 서유럽 또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7~8월이 가장 더운 ‘한여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달 평년보다 10도 가량 높은 초여름 기온이 유지되는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며,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프랑스 기상청 또한 이번 폭염에 대해 “프랑스 본토에서 본 적 없는 더위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전국 평균기온이 2003년 8월 폭염에 견줄 만큼 예외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 프랑스에는 역대급 폭염이 닥쳐 약 1만5000명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다.
이상 고온 현상은 올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에도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서유럽 지역에서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며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경신한 바 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더위에 각종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기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350곳이 넘는 학교가 휴교하거나 수업 시간을 조정했다. 야외 행사와 축제 등은 취소되거나 연기되기도 했다. 폭염 적색경보가 내려진 지역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하고, 야외 스포츠도 제한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사망자만 최소 18명. 어린이들이 차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거나, 고령자가 더위 탓에 사망하는 사례가 쌓이면서다. 아울러 더위를 피해 물가를 찾은 사람들이 익사 사고를 당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프랑스 가구의 에어컨 보급률은 24%다. 4가구 중 1가구 수준. 이마저도 집 안의 일부만 냉방 되는 경우가 다수다. 40도가 넘는 폭염이 닥친 상황을 에어컨도 없이 버텨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심지어 오래된 유럽 건물들은 더위에 취약하다. 추위를 견디는 단열 기능에 중심을 둔 특성 때문이다. 실제 벽돌과 석조 중심의 건물은 낮에 햇빛을 통해 열을 흡수하고 가두는 성질을 가진다. 이 때문에 지금 같은 폭염에도 쉽사리 열을 배출하지 못하고, 실내까지 뜨거워지는 현상을 겪고 있다.
과거의 기후에 맞춘 삶의 양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 이제는 ‘이상 고온’이라는 표현 또한 사라질 수 있다. 매년 반복되는 강도 높은 폭염이 일상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기후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계기상기구와 코페르니쿠스가 공동 발표한 2025년 유럽 기후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의 최소 95%는 평년보다 높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심지어 유럽은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온난화되는 대륙으로 불린다.
예컨대 에어컨 보급률 10%대 수준에 불과한 영국 또한 6월부터 폭염 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일부 지역의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등 여타 지역에서도 잇따라 폭염 경보가 내려지며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는 유독 전 세계적으로 ‘이상 고온’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달 남아시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5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나타나며 폭염 관련 사망자가 잇따랐다. 중국과 일본 일부 지역 또한 4~5월에 이미 30도가 넘는 한여름 날씨를 겪어, 화제가 된 바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16~18일 경상도권을 중심으로 관측 이래 가장 이른 폭염이 나타난 바 있다. 김천의 온도는 36도, 대구 34.7도 등으로 22개 지점에서 같은 시기의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올해 남은 여름 또한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큰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슈퍼 엘니뇨’가 시작되며, 내년까지 곳곳의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가 유지돼, 전 세계적으로 기온·강수량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올해 엘니뇨 형성을 공식 발표하고, 올해 말 정점에 달해 내년까지 영향을 줄 확률이 크다고 밝혔다. 엘니뇨는 단순히 기온 상승을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집중호우 등 극단적 기상 이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향후 5년간 전 세계 평균 기온은 기록적인 수준을 유지하거나, 그에 근접한 수준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며 “2026년말에 엘니뇨 현상이 예측되고 있으며, 다음 해인 2027년은 기록적인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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