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인왕산 화재
개미마을 등 인근 주민 대피
“40년 만에 처음 보는 산불”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40년 넘게 살았는데 산불 때문에 대피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인왕산은 불 안 나는 곳인데…등산로 입구부터 홍제3동 주민센터까지 500m 넘게 소방차가 꽉 들어찼어요. 마을 주민들 돌아오고 나서도 새마을회 주민들과 밤 동안 당번 서가면서 지켰습니다.” (문동일 홍제3동 새마을회장)
3일 방문한 서울시 서대문구 개미마을은 전날 발생한 화재로 뒤숭숭한 모습이었다. 잔불 진화를 위해 곳곳에 소방차가 대기 중이고, 물을 나르는 소방 헬기의 헬리콥터 소리가 고요한 마을에 울려 퍼졌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인왕산은 산불이 나지 않는 곳”이라며 이례적인 큰 산불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 회장은 “산불 끄시는 분들 간식도 챙겨드리고 혹시 밤 사이에 불이 번지면 주민 대피를 시켜야 해 대기했다”며 간밤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기후위기로 일상화된 산불이 결국 서울 도심까지 덮쳤다. 등산객 실수, 담뱃불 등으로 인한 화재가 종종 있었지만 마을 주민 대피령이 내려질 정도의 큰 불은 이례적이다. 2일 오전 11시 53분께 인왕산 북동쪽 자하미술관 인근 기차바위 쪽에서 발생한 산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반대편 개미마을 인근까지 들이닥쳤다.개미마을 120개 가구와 홍제동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주민센터, 학교 등으로 대피했다 저녁이 돼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개미마을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70대 김계연씨 또한 “이곳은 불 안 나기로 유명한 동네”라며 “주민센터에 대피했다가 밤 9시 돼서 겨우 집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산 안쪽에 위치한 사찰인 환희사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밖에 나와보니 능선을 타고 번지는 불길이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다행히 환희사에는 피해가 없었다”면서도 “경황이 없어 불상만 들고 급하게 대피했다”고 전했다. 현재 환희사로 가는 길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이례적인 ‘서울 산불’은 봄철 이상 고온, 가뭄 장기화 등 기후 변화 때문이다. 국내 산불이 기후 위기로 연중화, 대형화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온도 상승으로 대기 습도가 낮아지면 풀과 나무가 불이 번지기 쉽게 건조해져 작은 불씨도 산불로 번지게 된다. 지난 1~2일 이틀 서울 낮 최고 기온은 25도로, 같은 기간 평균값(14도)보다 10도 높았다. 비도 적게 내렸다. 서울은 올해 들어 이달 1일까지 91일간 10㎜ 넘는 비가 내린 날이 단 하루(1월 31일)에 불과했으며, 마지막으로 비가 내린 지 20일이나 지났다.
서울만의 일도 아니다. 산림청 산불 정보에 따르면 올해부터 지난 1일까지 전국에서 380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전년(318건) 동기 대비 19.45%, 예년(2013~2022) 동기 평균(247.5건) 대비 53.53% 높은 수치다. 최근 10년 중 가장 많은 횟수다. 2일에만 전국에서 3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특히 충남 홍성과 대전시에서는 ‘산불 3단계’가 발령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두 지역 산불은 거주지를 덮쳐 민가, 축사 등 15채가 불에 탔다. 국립산림과학원이 1960년부터 2020년까지 기상 관측 자료를 활용해 산불기상지수(FWI)를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1~3월 지역별 FWI가 30~50% 상승했다. 기상청의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봄철 산불 발생 건수는 98일로, 10년 평균(77일) 대비 27일 증가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4일 밤부터 중국 산둥반도 쪽에서 다가오는 저기압에 영향을 받아 일부 지역에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됐다. 3, 4일이 건조한 날씨가 산불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