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어디로 눈 돌려도,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거리의 사람 절반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평일 낮 홍대입구역 인근 거리. 한 골목 모퉁이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쓰레기 더미가 포착됐다.
제대로 분리수거도 되지 않은 채 버려진 쓰레기들. 그중 대다수는 가장 나쁜 쓰레기로 분류되는 플라스틱이다.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2위 수준인 한국의 현실이 반영된 셈이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는 ‘공공의식’의 문제. 하지만 유독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을 두고, 한국인의 인식이 모자라서 생긴 문제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
실제 우리 국민 중 80% 이상이 플라스틱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중 다수는 플라스틱 사용을 피하는 게 유독 힘들다고 답했다.
이에 소비자들에게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도록 하는 방안을 넘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의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OECD가 지난 2022년 발간한 ‘2060 글로벌 플라스틱 정책 시나리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90.5kg으로 호주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이 42kg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평균보다 2배 이상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
그러나 플라스틱 사용과는 별개로, 플라스틱이 유발하는 환경 오염 등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은 높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1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플뿌리연대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플라스틱 오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3.6%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동 의지도 부족하지 않았다. 약 81.3%는 일상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탄소배출, 해양쓰레기 등 문제 외에도 최근 떠오르고 있는 ‘미세플라스틱’ 인체 검출 등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81.7%에 달해, 관심이 적지 않은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종합하면, 플라스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플라스틱 사용량을 보인다는 얘기. 이 괴리는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플뿌리연대는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플라스틱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약 68.7%의 응답자가 ‘구매하려는 제품 대부분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로만 판매되어서’라고 답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면 구매나 이용 과정이 더 복잡해진다는 응답이 39%로 뒤를 이었다.
실제 플라스틱 없는 소비 생활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 예컨대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플라스틱 용기나 봉투를 제외하는 것은 쉽사리 상상하기 힘들다. 요즘과 같은 여름철 테이크아웃 음료를 구매할 때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일일이 텀블러를 지참해야 한다.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제품을 소비하고 사용하는 게 더 편한 상황인 셈. 심지어 플라스틱 사용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시민 중 79.1%는 다회용기나 리필 시스템 등이 마련된다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이 줄어들 것 같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아울러 플라스틱 제품이나 일회용 배달 용기 등에 비용이 부과된다면, 사용을 줄일 것이라는 답변도 56.1%에 달했다.
이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주체가 더 이상 ‘소비자’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단순히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등의 소비자 변화를 말하기 전에, 실제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 소비자는 이미 플라스틱을 쓰지 않을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시민들은 정부와 기업이 탈플라스틱을 주도해야 한다는 응답을 내놨다.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주체를 묻는 항목에 정부라고 답한 응답은 64.4%에 달했다. 기업이라고 한 응답자는 58.8%로 뒤를 이었다. 소비자 개인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답한 응답은 48.5% 수준이었다.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는 다회용기 및 리필 시스템 구축(44.4%)이 꼽혔다. 텀블러 사용 시 할인이나 보증금제도 등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정책을 꼽은 비율은 41% 수준이었다.
다회용기 및 리필 시스템에 대한 인지도는 90.9%, 실제 이용 경험은 55.0%에 달했다. 대부분은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금지’ 등으로 인한 경험이었다. 강제성이 없는 야구장(21%), 장례식장(22%), 배달음식(28%) 등에서는 사용 경험이 낮았다. 강제성 유무에 따라 사용 경험이 크게 벌어진 셈이다.
특히 탈플라스틱을 위해 감축이 가장 시급한 산업군은 ‘포장재’와 ‘소비재’가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플라스틱 사용이 필수적인 산업군으로는 의료, 전기 및 전자, 건설 및 건축 등이 꼽혔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제품들에서 플라스틱을 줄이는 게 가장 먼저라는 의견이 많았다는 얘기다.
플뿌리연대는 “이번 조사를 통해 시민들은 이미 일회용 플라스틱과 헤어질 결심이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개인의 의지와 실천을 가로막는 플라스틱 위주의 생산·유통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정책적 결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플뿌리연대는 지난 22일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플라스틱 졸업식’을 열고 학사모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플뿌리연대는 ‘플라스틱 뿌리를 뿌리뽑는 연대’의 줄임말로 ▷그린피스 ▷기후변화청년단체GEYK ▷기후솔루션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녹색연합 ▷동아시아바다공동체오션 ▷마포자원순환네트워크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서울환경연합 ▷알맹상점 ▷여성환경연대 ▷자원순환사회연대 ▷자원순환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 등 17개 시민단체로 구성돼 있다.
woo@heraldcorp.com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788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