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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페트병은 ‘돈’이라는데...배출~선별 단계마다 꼬였네 [2022 연중기획 지구무죄 인간유죄-⑨9월6일은 자원순환의 날]]
2022.09.02

자원재활용 악순환의 현주소
주택가 주민 “배출하는 날이 있다고?”
거리곳곳 투명페트 섞인 재활용봉투
정확한 배출 범위·요일 홍보 필요
수거과정에서 재혼합 사례도 빈번
별도 선별시설 갖춘곳 16.7%뿐
시설업체는 적자늪 “정상가동 불가능”
정부·지자체, 선순환의 체계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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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배출 요일이 따로 있다고요?” “어차피 섞이니 그냥 합칠 수밖에요.” “1억원 넘는 기계를 기껏 설치했는데, 먼지만 쌓입니다.”

 

투명페트병의 자원순환 생태계의 현장 목소리다. 투명페트병은 ‘쓰레기’가 아닌 ‘돈’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소중한 자원이다. 하지만 배출·수거·선별 등 단계마다 자원순환의 벽이 존재했다. 헤럴드경제는 오는 6일 ‘자원순환의 날’을 맞아 투명페트병의 자원순환 생태계를 점검했다.

 

▶“별도 분리배출 요일이요? 그게 뭐죠?”=지난 8월 31일 오후 헤럴드경제 본사 헤럴드스퀘어가 있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인근 주택가 주민을 만나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요일제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2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30여명을 만났다. 그중 정확히 배출요일을 알고 있는 주민은 단 1명뿐이었다. 올해 87세인 강영자 할머니다. 강 할머니는 “분리배출 요일제가 있다는 걸 뉴스에서 봤다”며 “젊은 사람들이 더 잘 알겠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주택가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요일제는 투명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이고자 도입된 제도다. 민간업체와 개별 계약 등을 거쳐 분리배출요일을 정하는 공동주택(아파트)과 달리 단독주택이나 빌라·소규모 상가 등 일반 주택가는 별도 요일이 없으면 투명페트병만 따로 수거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지방자치단체별로 특정 요일을 정한 뒤 해당 요일에만 투명페트병·비닐을 수거하는 방식이다. 지자체마다 요일이 상이한데 서울 용산구는 목요일이다.

 

강 할머니를 제외한 나머지 주민 대부분은 분리배출 요일제가 있다는 것부터 모르고 있었다. 상당수가 “그런 제도가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들어본 적 있다는 주민들 역시 용산구의 배출 요일을 헷갈렸다.

 

주민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가 아닌 절대다수가 모른다는 건 결국 정부·지자체의 홍보 문제다. 용산구만의 문제도 아녔다. 서울 마포구·은평구 인근 주택가에서 만난 주민 역시 대부분 배출요일을 모르고 있었다.

 

배출 현장도 당연히 분리배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8월 30일(화요일) 마포구 망원동 인근 주택가. 마포구의 투명페트병 배출일은 수요일이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 배출된 재활용 쓰레기봉지 안엔 상당수 투명페트병이 섞여 있었다. 간혹 투명페트병만 가득 모은 봉지도 있었다. 하지만 배출요일이 아니었다.

 

용산구나 은평구도 상황은 같았다. 배출요일이 아니지만 재활용 쓰레기더미에선 어김없이 투명페트병이 다수 포함됐다. 은평구 불광1동의 투명페트병 별도 배출요일은 목요일이고, 기타 재활용품 배출요일은 일·화요일이다. 31일(수요일)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세 집 건너 한 집꼴로 재활용쓰레기를 내놨다. 투명페트병도 함께다.

 

분리배출할 투명페트병의 정확한 범위도 홍보가 시급하다. 실제 주민을 만나 플라스틱 소재의 ▷생수 ▷음료수 ▷투명우유 ▷투명막걸리 ▷유색맥주병 ▷일회용 컵 ▷식품 포장용기 ▷양념류 ▷식용유 ▷요구르트 중 투명페트병에 포함되는 4가지를 선택해봤다. 이는 서울시의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안내 사례로 명시된 내용이다. 정확히 4가지를 고른 주민보다 그렇지 않은 주민이 더 많았는데 가장 많이 헷갈린 대목이 ‘양념류’와 ‘일회용 컵’이었다. 간장이나 식초 등 양념류 페트병은 투명페트병이지만 깨끗하게 세척하기 힘들어 분리배출 항목에서 제외돼 있다. 일회용 컵도 일반 플라스틱으로 배출해야 한다.

 

별도 분리배출이 잘 되더라도 끝이 아니다. 수거 과정도 여전히 난관이다. 투명페트병을 분리배출해도 수거 과정에서 재혼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수거업체들은 배출 과정뿐 아니라 선별 과정에서 투명페트병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는 현실을 탓하고 있다. 따로 투명페트병을 수거·이송해도 결국 선별장에서 섞이니 굳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 투명페트병만 따로 취급할 필요가 없단 이유에서다.

 

이 같은 사례가 알려지면서 오히려 자원순환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가 더 냉담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노력한 만큼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서울 마포구 분리배출 현장에서 만난 박모(42) 씨는 “신경을 많이 썼지만 이젠 안 한다. 속은 기분이다. 어차피 섞인다는데 분리배출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나마 지자체의 단속이 이어지면서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재혼합 수거 사례는 많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논란은 주택가에서도 반복될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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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시켜서 하긴 하는데”=선별 과정은 대규모 설비 투자가 동반된다. 때문에 문제도 한층 더 복잡하다. 투명페트병 재활용률 향상 및 고품질화에 필수인 투명페트병 별도 선별시설을 갖춘 곳은 전국 선별장의 20%가 채 되지 않는다.

 

2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에서 투명페트병 별도 선별시설을 갖춘 선별장은 총 57개소(민간 43개소, 공공 17개소, 중복 3개소)다. 전국 재활용 쓰레기선별장 341곳 중 16.7%에 불과하다. 즉, 전국 선별장 5곳 중 4곳은 투명페트병만 별도로 모은 쓰레기를 확보하더라도 불투명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다른 플라스틱과 같은 공정을 통해 처리할 수밖에 없다.

 

가장 이상적인 자원순환은 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만드는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이다. 다만 폐기물을 식품용기로 쓰기 때문에 위생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페트를 식품용과 비식품용으로 따로 구분해 선별하는 시설이 필수다.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건 이미 설비를 갖춘 곳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헤럴드경제는 환경부 집계를 바탕으로 별도 선별시설을 갖춘 수도권 내 선별업체 25곳을 취재했다. 이 중 확인된 14곳 중 절반(7곳)이 시설을 정상 가동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투명페트병 물량이 부족해 시설을 가동하지 못한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아예 가동을 멈춘 상태란 답변도 있었다.

 

인천 소재의 A선별업체 관계자는 “아파트를 통해 확보한 물량이야 그나마 쓸 만하다. 하지만 백화점, 마트 등에서 가져온 쓰레기들은 분리배출·운반 등이 미비해 투명 선별시설에 투입할 만한 게 거의 없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지자체들이 직접 투명페트병을 도매 입찰에 부치기 시작하면서 선별업체들은 투명페트병을 확보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 기존 순환 과정에선 선별업체가 수거된 쓰레기를 종류별로 선별·압축하고, 재활용업체는 이를 구매해 세척·분쇄해 판매했다. 하지만 지자체가 직접 입찰에 나서자 재활용업체는 선별업체 대신 지자체로부터 직접 물량을 매입할 수 있게 됐다. 선별업체를 통하지 않고도 더 저렴하게 지자체로부터 투명페트병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선별업체으로선 고객이 일순간 경쟁자로 바뀌게 됐다. 투명페트병 물량이 줄면서 확보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 부담도 커졌다.

 

B선별업체 관계자는 “재활용업체로선 최고 입찰가를 쓰고도 그전보다 이익이 되고, 지자체 역시 새롭게 돈벌이가 생겼다. 정부 말만 믿고 투명페트병 별도 선별시설에 투자한 선별업체만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자체도 돈을 벌고 재활용업체도 더 이윤이 남는데 정작 돈을 투자한 선별업체만 손해를 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B업체는 투명페트병 선별시설에 1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홍보만 믿고 투자했는데, 지원금이라곤 고작 월 80만원이 전부”라고 했다.

 

정부도 더 많은 선별업체가 투명페트병 별도 선별시설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선별업체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따라 생산기업들이 낸 분담금 중 실적에 비례해 지원금을 받는다. 별도 선별시설을 보유한 업체엔 더 많은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투자를 유인하고 있다.

 

지원금은 결국 처리물량과 비례한다. 투명페트병 확보 자체가 어려우니 지원금도 투자금보다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투자금 1억5000만원·월 지원금 80만원’이다.

 

주택가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요일제는 지난해 12월 말 시행됐다. 벌써 시행 9개월째다. 여러 노력이 모이고 있지만 여전히 단계마다 걸림돌이 적지 않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아직 여건과 인프라가 미비한 상태다. 결국 한국환경공단이나 환경부 등 정부가 나서서 전문 체계와 인프라가 갖춰지도록 시장을 조성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수·최준선 기자

 

dlcw@heraldcorp.com
human@heraldcorp.com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20902000295&ACE_SEAR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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