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적지 않은 이들이 식물성 대체 식품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무엇인가 ‘대체’됐을 테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맛은 덜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건강을 위해 맛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건강에 양해를 구하고 맛을 선택하거나, 둘 중 하나다.
푸드테크 스타트업 ‘더플랜잇(The PlantEat)’은 이같은 편견에 반기를 든다. 잘 대체하기만 하면 맛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더플랜잇은 전 세계 수만 개 식품의 성분을 분자 단위로 해체한 뒤, 특정 식품의 동물성 성분을 대체하려면 어떤 식품이 얼마나 필요한지 판단한다. 핵심은, 그 판단을 사람의 혀가 아닌 데이터베이스와 인공지능(AI)이 한다는 점이다. AI가 권고한 재료가 실제 존재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그래서 더플랜잇은 직접 소재 개발에도 나섰다.
더플랜잇은 창업 5년 만에 6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했다. 글로벌 기술 경연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창업자인 양재식 대표를 직접 만나 ‘맛있는 식물성 식품’의 가능성을 엿봤다.
-창업에 나선 배경이 궁금합니다.
“학·석·박사 과정 모두 생명공학을 전공했는데, 대부분의 연구가 다이어트, 비만, 당뇨, 암 등 일부 분야에 집중되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아무래도 그쪽으로 돈이 몰려서겠죠. 하지만 제가 공부했던 곳은 기독교 학교(한동대학교)였고, 자연스레 선교와 맞물려 저개발 국가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저개발 국가에 초점을 두고 바이오 연구를 하다 보면, 영양실조나 단백질 부족 등 문제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뭔가 이상하잖아요. 바이오라는 솔루션으로 영양 과잉으로 인한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동시에 영양 부족으로 인한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거예요. 같은 시대에 선진국과 저개발 국가가 서로 다른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 그 자체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 대표가 더플랜잇을 설립한 것은 지난 2017년. 그전까지 그는 농총진흥청과 생식·건강 주스를 생산하는 업체 ‘이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박사 과정을 밟는 과정에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사실 정부 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핵심 어젠다도 바뀌어요. 장기적으로 특정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어젠다에 따라 연구 방향도 바뀌게 되죠. 민간 기업은, 식품을 통해 인류에 보탬이 되겠다는 장기 비전을 세워두긴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다 보면 장기 목적보다는 단기 이윤 창출에 함몰될 때가 있고요. 학교에서 연구에만 집중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직접 교수가 되기 전까지는 내 연구가 아니라 남의 연구를 돕기 마련이잖아요. 너무 아카데믹하게 흘러갈 수 있는 문제도 있고요.
결국 제가 주목한 문제를 풀어내는 데에는 창업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박사 과정을 1년 반 정도 밟은 시점에 창업에 나서게 됐습니다.”
-창업 과정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다면?
“1년 반짜리 신입 박사가 창업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업 경험이 있던 제 지도교수님 도움이 있었습니다. 교수님 덕에, 당시 저희 연구실에선 ‘논문보다는 특허가 중요하고, 특허도 좋지만 제품이 더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당시에 서울대학교와 경기도에서 진행하던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저희 연구실 인원 20명이 참여하기도 했고요. 거기서 수상한 이후로 아이템을 개발하고 특허를 내기 시작했죠. 교수님이 제 창업의 트리거가 돼주신 셈이에요.”
양 대표는 이후 자신감을 얻어 지난 2017년 서울대의 창업경진대회인 ‘비더로켓 3기’에 출전, 대상을 거머쥐었다. 비더로켓은 국내 스타트업 투자사들의 관심이 일제히 집중되는 행사 중 하나다. 1기 대상 수상자인 AI 스타트업 수아랩은 지난 2019년 미국 기업 코그넥스에 2300억원 기업가치로 매각되기도 했다.
비더로켓 대상을 수상하고 엑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로부터 초기 자금을 유치한 이후 양 대표는 휴학을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더플랜잇이 유치한 투자금은 누적 기준 약 63억원. 임팩트 투자 전문 벤처캐피탈인 인비저닝파트너스 등이 더플랜잇의 성장을 주목하고 있다.
-비더로켓 대상을 안겨 준 아이템은 뭐였나요?
“약콩으로 만든 마요네즈 제품입니다. 지금은 ‘잇츠베러(Eat's Better) 마요’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데요. 국내서 상용화된 첫 식물성 마요네즈로, 현재 저희 회사 제품 중 가장 큰 매출을 올리고 있죠.
마요네즈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계란, 식용유, 식초 등 세 가지 재료가 필요해요. 이 중에 계란은 동물성 식재료이니까, 이걸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한 거죠. 식품 산업에서 뭔가를 대체한다고 말할 때, 그 방향성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영양을 대체할 수도 있고, 기능을 대체할 수도 있고, 맛을 대체할 수도 있죠. 저희는 약콩을 통해 계란의 기능을 대체했습니다. 콩은 식초와 기름을 섞어주는 ‘유화작용’을 계란 대신 해줄 수 있거든요.”
-마요네즈는 몇 달에 한번 살까 말까 하는 제품이잖아요. 다른 제품은 뭐가 있나요?
“마요네즈만으로는 부족하죠.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지만, 한 번 구매한 고객이 다시 제품을 구매하기까지 최소 몇 달은 걸리거든요. 그래서 계란이 많이 쓰이고 있는 분야이면서, 동시에 좀 더 데일리하게 접할 수 있는 제품이 뭘지 고민했어요. 결론은 제과제빵 분야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요네즈뿐만 아니라 비스켓, 크래커, 우유 등 다양한 식물성 제품들을 판매, 개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식물성 식품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은데.. 차별점은 뭔가요?
“식품 연구라는 게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같은 재료를 갖고 만들더라도 내가 한 된장찌개와 셰프가 한 된장찌개의 퀄리티가 다른 것처럼요. 그래서 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게 핵심인데, 스타트업으로서 최고의 식품 연구원들을 많이 모셔오기가 쉽진 않았죠. 그래서, 나를 100명 정도 복사해보자는 느낌으로 IT 자동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식품 개발 자체를 데이터 기반으로 하는 거죠. 그 방법론이 저희의 핵심 경쟁력입니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자동화한 건가요?
“더플랜잇이 이뤄낸 자동화가 뭔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원료의 선택을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가 합니다. 셰프가 일반인보다 대단한 건 결국 좋은 원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거든요. 당장 누군가에게 ‘A라는 음식을 만드는 데 어떤 재료가 필요할까’ 떠올려보라 해서 만들어낸 목록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원재료를 꿰고 있고 그 중 가장 좋은 원재료를 골라낼 줄 아는 AI가 만들어낸 목록은 당연히 차이가 있겠죠.
두 번째는, 구체적인 레시피입니다. A 재료를 몇g 넣을지, B 재료는 몇g 넣을지, 사람이 직접 테스트하려면 다 시행착오예요. 소금 10g을 넣었더니 너무 짜서 다음번엔 5g만 넣고.. 그랬더니 또 단맛이 부족한 게 느껴져서 설탕을 조금 더 넣고.. 하지만 저희는 목표로 하는 결과물을 데이터베이스로 갖고 있다 보니, 어떤 원재료를 얼마나 넣어야 그 맛이 나는지 자동으로 계산이 되죠.
이렇게 저희 데이터베이스가 최선의 레시피, 차선 레시피 등을 순서대로 알려주면, 그걸 토대로 연구원들이 개발에 나섭니다. 개발 시간이 단축되고, 연구원들의 능력 차이는 덜 중요해지죠.”
-자동화된 개발 인프라가 있으면, 다른 업체의 식품 개발도 대신 해줄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저희 제품을 만들어 팔긴 하지만, B2B 고객도 적지 않아요. 식품의 소재를 납품하거나 아예 완제품을 개발해주기도 하죠. 저희 회사를 단순히 식물성 우유나 마요네즈 만드는 회사로 보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B2B 고객 관점에서 보면 데이터 기반의 식품 개발 방법론을 갖고 남들보다 빠르게, 독창적인 방식으로 식품을 개발할 수 있는 회사입니다.”
실제 더플랜잇은 커피빈, 프레시코드, 올가니카, 현대백화점에 소스 및 베이커리류 제품을 개발, 납품하고 있다.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구인컴퍼니’에는 대체육 조미액을 납품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회사가 수집한 데이터 질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데이터의 면면이 궁금합니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이런 것들을 보통 영양 성분, 혹은 매크로 뉴트리언트(거대 영양소)라고 불러요. 거시적 관점에서 영양 성분을 분석한 거죠. 하지만 음식을 기능 측면에서 한 단계 더 깊이 분석하려면 영양 성분이라는 틀만으로는 부족해요. 예컨대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타민산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까지 봐야 하죠. 이렇게 분자 단위로 성분을 들여다 보면, 우유 하나만 놓고 봐도 100개가 넘는 성분으로 구성돼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희는 8만개 식품에 대한 데이터를 분자 단위로 갖고 있어요. 전 세계 각국의 식품 관련 기관, 연구소, 대학이 갖고 있는 논문과 특허 등 문서화된 것들을 최대한 끌어모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라고 자부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눈여겨볼 점은, 식품 수는 8만개이지만 최소 단위로 성분을 쪼개 봤을 때는 종류가 1만개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서로 공유하는 성분이 있다는 얘기인데, 이는 즉 한 식품의 성분을 다른 식품의 성분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저희의 데이터베이스는 어떤 식품에서 어떤 성분을 어떻게 가져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조합해 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더플랜잇은 이같은 식품 개발 시스템의 경쟁력을 인정받아, ‘엑스프라이즈 재단(XPRIZE Foundation)이 미래 단백질을 찾기 위해 개최한 경연에서 본선에 진출했다. 이 경연은 오는 2024년 최종 우승팀을 선발할 예정으로, 우승자에게는 1500만달러를 수여한다. 올초 확정된 본선 리스트에는 전 세계 31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는데, 그 중 아시아 기업은 7곳에 그쳤고 한국 기업으로는 더플랜잇이 유일했다.
지난 9일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고의 농식품 기술 경연대회로 꼽히는 ‘퓨처 푸드 아시아 2022’ 결선에서 ‘카길 푸드 포 굿(The Cargill Food for Good)’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상은 세계 최대 곡물 회사인 카길이 직접 수여하는 상으로, 수상사에게는 카길 혁신 센터와 프로젝트 협업 기회가 부여된다.
-퓨처 푸드 아시아에서 수상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데이터 기반의 개발 시스템과 함께, 소재 사업 측면에서의 잠재력이 주목을 받았어요. 국내산 특수 대두 종자인 ‘하영콩’ 품종으로 콩 비린내와 알레르기 요인이 없는 대두 분말 소재를 개발했는데, 이 부분이 좋은 평가를 받았죠.
대체하고자 하는 식품 A의 성분과, A를 대체하기에 가장 적절한 식품 B의 성분을 비교해보면, 아무리 유사하다 하더라도 동일성이 60% 이상이 되기 힘들어요. A에 있는 성분이 B에는 없기도 하고, 반대로 A에는 없는 성분이 B에 있기도 하죠. 그래서 B의 성분 중 불필요한 걸 제거해내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대체해내려는 식품의 대부분은 단백질이 포함돼 있고, 이걸 대체하려면 콩이 필수적인데, 문제는 콩에는 불필요한 성분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콩 껍질을 제거하고, 콩기름은 덜어내는 등 여러 가공을 거치더라도, 결국 제거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죠. 콩 비린내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요인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건 아예 종자 단계에서부터 개량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개량한 콩이 하영콩 품종이군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직접 개발한 건 아니고, 종자의 특허권, 즉 종자권을 사왔어요. 동물성 단백질을 식물성 단백질로 바꿔 나가는 작업이 계속 확장될 텐데, 그 과정에서 무조건 필요한 원료를 확보한 거죠. 식품 개발을 위한 데이터 인프라가 아무리 좋아도, 데이터가 추천해준 성분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존재하지 않던 소재들을 직접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간 더플랜잇은 개량된 콩 종자를 국내 농가에서만 확보해 왔지만, 최근에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해외 농가와도 계약을 맺었다. 국내보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기계화된 농업도 수월해 콩 구매 비용이 7분의1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해외 진출의 의의는 단순히 재료 구매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해외 현지에서 재배되는 더플랜잇의 콩 종자는 기존처럼 선진국 소비자들이 먹을 고기를 사육하는 데 투입되는 대신, 완제품으로 생산돼 현지에서 소비될 수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더플랜잇이 사업을 확장할수록 전 세계 영양 불균형 문제도 해소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양 대표는 강조했다.
“한쪽은 영양 과잉으로, 또 다른 한쪽은 영양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다고 말씀드렸었죠. 그 문제는 선진국 사람들이 육류를 너무 많이 먹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소고기 1㎏을 얻으려면 곡물이 15~20㎏이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많은 곡물들이 과연 어디에서 생산되나 보면 주로 저개발국이고, 저개발국이 생산한 곡물은 주로 선진국 사람들이 먹을 고기의 사료로 사용되죠. 그렇게 저개발국 국민들의 단백질이 점점 부족해지는 겁니다.
결국 선진국 사람들이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해결될 문제예요. 해결의 핵심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식물성 대체 식품이라고 생각하고요. 저희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재배한 콩은 소를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죠. 그게 맛있으면 현지 사람들의 단백질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렇게 저희가 지역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