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염·최장 장마...재난재해 급증
위기 원인은 ‘빠르게 뜨거워지는 지구’
10년마다 0.2도씩 더워지고있는 한반도
전 지구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중 ‘비상’
정부, 지난 12월 ‘2050년 탄소중립’ 선언
“구체적 실현방안 없는 공염불” 지적도
기업도 ESG투자·폐기물 감축 적극적...
정부차원 인센티브 ‘친환경’ 유인책 내놔야
어린 세대부터 지속적 경험·교육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감수성 확대 중요
기록적인 폭염과 최장기간의 장마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한반도에도 기후위기가 점차 심각한 양상을 띄면서 이에 대한 위기의식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탄소중립 목표를 내놨지만, 기업들이나 국민들은 물론 정책을 내놓은 정부 마저도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르는 듯 하다. 이에 헤럴드경제는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기후 및 환경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기후위기 현황 및 환경 정책 진단을 위한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는 조범자 H.에코포럼 TF팀장(선임기자)의 사회로, 변영화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 미래기반연구부 기상연구관과 정은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이지훈 테라사이클 한국지사 대표 등이 참석했다.
▶기록적 폭염·최장 장마...기후위기 공포 확산=최근 이상기후가 연이어 발성하면서 기후위기 의식이 일반인들에까지 확산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중부지방과 제주는 기상 관측 이후 가장 긴 장마를 경험했고, 이후에는 기록적 폭우가 이어지며 산사태 피해를 봤다. 지난 2019년에는 태풍이 연달아 3개가 한반도를 찾아오면서 강풍과 호우에 따른 피해가 발생했다. 2018년에도 최고기온이 40도를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다. 변영화 기상연구관은 “폭염이나 폭우로 인한 홍수, 가뭄, 산사태, 산불 등이 대부분 기후 변화와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기후위기의 원인은 지구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미 산업혁명 시기에 비해 전 지구의 평균 온도가 1.2도 가량 상승했고, 지난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는 2도 이내로 기온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는 안건이 채택됐다. 지난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속된다면 2030~2052년 사이에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상승할 가능성이 있으며 2100년까지 1.5도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변 기상연구관은 “매년 지구 평균 기온이 갱신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재난재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온난화가 가속하면 이전에 알고 있던 기후의 패러다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과학자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평균 기온이 전 지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지난 100년간 기온을 보면 10년마다 약 0.2도씩 올라가고 있다. 변 기상연구관은 최근 한반도에 연속적으로 나타났던 폭염과 장마 등을 언급하며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기후 상황들이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이제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바로 기후가 위기 상황이란 인식을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환경정책 실효성은 “글쎄...”=정부에서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관련 대책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다만 목표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행 방법이 없다며 뼈아픈 질책들이 이어졌다.
정은아 연구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희망적”이었다면서도 “정부의 환경 정책이 공개된 올해는 정부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국제적 기준에서 봤을 때도 미달이라는게 정 연구원의 진단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12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이 0이 되도록 하는 ‘2050년 탄소중립’을 제시하고 오는 6월까지 정교한 시나리오를 수립하기로 했다. 또 오는 2034년까지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를 현재 60기에서 30기까지 줄이기로 했다.
정 연구원은 이에 대해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30기를 줄인다고 목표를 세워놓고, 아이러니하게 현재 발전소 7기를 새로 짓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할 수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정 연구원은 발전량의 약 40%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독일이 오는 2038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기로 약속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원자력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만큼 탈석탄 정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가 하는 행동을 보면 탈석탄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의지가 과연 있는건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변 연구관도 “모든 국민에게 탄소저감의 책임이 있기는 하나 개개인이 모두 같은 크기의 책임을 지우기는 어렵다”며 “지속되어 온 산업구조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요금을 예로 들며 “전기요금 인상안이 나오면 요금 폭탄을 어떻게 견디냐는 비판과 함께 가정용 전기 요금과 산업용 전기요금의 차이가 거론된다”며 “산업에서 많은 부분들을 감당해야 하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들의 산업 활동을 유지하며 새로운 프레임으로 옮겨가야할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韓 기업들, ESG 투자·업사이클링에 적극적=기업들도 이같은 기후위기 의식에 맞게 친환경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에서 기업의 장기 지속성을 검토해 ESG투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힌 이후 국내외 기업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이지훈 본부장은 “기업들의 친환경 정책을 컨설팅하는 테라사이클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지 5년 만에 전세계 21개 지사 중 3~4위의 성과를 낼 정도로 한국 기업들이 친환경 활동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포장재를 저탄소 소재로 바꾸거나 생산된 제품을 올바르게 수거해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한국 기업들이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본부장은 에너지 만큼이나 폐기물 감축도 중요하다고 꼽았다. 지난 2018년 재활용 대란이 일어나면서 국민 사이에서 분리수거한 만큼 재활용이 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 퍼졌다. 덕분에 이를 생산한 기업들도 환경 활동에 대한 압박이 들어왔다. 다만 이 본부장은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이 친환경 정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인책을 좀 더 내놓아야 한다고 봤다. 단적으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폐기물 처리업자들은 폐기물 처리량에 따라 보조금을 받다보니 재투자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며 “정부에서 재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준다면 지속적인 시설투자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본부장은 “플라스틱 생산 기술이 뛰어난 만큼 재활용하는 것보다 새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단가가 더 낮다”며 “국내 기업 입장에서 재생 원료를 사용하는 게 경쟁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재생 원료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을 위한 유해하지 않다는 인증제도 등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했다.
▶덜 쓰고 분리수거 꼼꼼히 하고...국민들의 인식 전환 필요=재활용보다는 아예 사용을 하지 않는 게 쉽고 빠른 방법이라는 데에도 의견이 모였다. 변 기상연구관은 “에너지는 결국 수요를 줄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전깃불 하나라도 더 끄는 것”이라고 했다.
이 본부장은 아직 우리나라에 ‘미니멀리즘’이 자리잡지 않은 만큼 처리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재활용에서는 순수 소재가 오염되지 않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귀찮다고 음식물이 묻은 용기를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하는 사소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까지 망칠 수 있다”며 “국민들이 함께 재활용 활동을 하는 거라는 인식이 좀더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인식을 전환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변 연구관은 “자연에 대한 배려심 등 환경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심과 감수성이 얼마나 커지느냐가 우리 사회의 관건이다. 어린 세대부터 지속적인 경험과 교육을 통해 경제 일변도의 사회에서 좀더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고 사람이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정 연구원은 “지속가능한 한계 범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조율하는 ‘도넛경제’가 필요하다”며 “우상향식 경제 성장만을 기대하기보다 경제 체제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자본주의 체제도 기후위기를 경험하게 될 경우 굉장히 큰 위기를 겪을 것”이라며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나의 자본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활동을 하는 기업들에 투자해서 보다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체제를 마련하는 게 긍정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사회=조범자 H.에코포럼 TF팀장(선임기자)
정리=주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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