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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대신 올리브…대파 가격 이상급등…그 이면엔 해를 더하는 ‘이상기후’
2021.03.04

[‘조용한 암살자’ 기후변화의 습격]

 

매년 폭염에 타버리는 작물 늘어나
올리브·커피 등 아열대작물로 대체
쌀·파·양파 ‘애그플레이션’ 일상화
해수온도 상승에…명태 러시아로
아열대성 희귀어종들 그자리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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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시금치가 말라 죽으니까 견딜 수가 없었어요. 농산물 가격이 뛰어도 수확량이 워낙 적으니까 농부가 돈을 못 벌죠”

 

매년 폭염에 타버리는 작물을 보며 속을 태웠던 주동일(64) 씨는 몇 년 전부터 전라남도 고흥에서 올리브를 키우고 있다. 19년간 전라북도 익산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한반도가 점점 뜨거워질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건 남유럽과 중동에서 자라는 올리브. 영하 10도면 얼어 죽는 올리브를 키운다 했을 때 주변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올해 주씨의 올리브 농사는 17만5200㎡(5만3000평)의 안정적인 규모로 접어들었다. 그는 “기온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며 “기후 변화로 피해가 크니 농민들도 대체작물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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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지구는 한반도 농가를 바꿔놨다. 기후 변화로 농가 피해가 늘면서 배추, 사과 처럼 익숙한 농산물을 포기하는 농부가 늘었다. 그 빈 자리는 아열대 작물이 채우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작물 종류가 달라지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물가를 높이고 폭염 등으로 인한 피해를 키우기도 한다.

 

▶‘미친 파 가격’ 뒤에는 이상 기후 있다=최근 쌀·양파·대파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의 원인에는 이상 기후가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로, 농산물 가격의 오름세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걸 뜻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주요 농산물 물가는 작년보다 올랐다. 지난 2일 기준 쌀 20㎏ 소매가는 5만9818원으로 1년 전 가격인 5만1717원보다 8000원 가량 상승했다. 1년 전 1㎏당 2197원이던 파는 7399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양파 1㎏은 3459원으로 전년 대비 50% 뛰었다. 모두 지난해 기상여건이 악화하면서 작황부진으로 생산량이 감소한 작물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씨처럼 재배 작물을 바꾸거나 농사를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이상 기후로 농가 피해가 심각하다”며 “올해도 최근 비가 오기 전까지 계속 가뭄이었고 앞으로도 폭염, 장마가 빈번해져 (농가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90년 여름엔 한 달 내내 폭염=한반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길래 농가가 아열대 작물까지 눈길을 돌린 것일까.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1980년대 섭씨 12.2도였던 한반도 연평균 기온은 2010년대 13도로 상승했다. 30년 간 1도 가까이 상승한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기상청의 ‘2020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10일 이하였던 폭염 일수는 현재 10.1일이 됐다. 21세기 후반에는 35.5일까지 상승한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평균 기온이 1도 올랐다고 하면 작아보이지만 점점 기온이 상승해 3~4도 올라가면 한반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해다.

 

현재 시나리오대로 폭염이 이어질 경우 한반도 풍경은 달라진다. 통계청 조사 결과,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에 대구는 사과 재배 가능지에서 제외된다. 21세기 말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를 볼 수 있다.

 

▶명태 천연기념물 될라…아열대 어종 등장=해수면도 뜨거워졌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16년 사이에 국내 표층 해수온은 1.23도 상승했다. 국내 연안 해수면은 1989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연안 해수면은 연평균 2.97㎜ 증가했다. 전 세계 평균과 비교했을 때 2배 빠른 속도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미래기반연구부 과장은 “빙하기나 간빙기만 해도 몇 만년 동안 2도 내외로 온도가 움직였는데, 지금의 기후위기는 100년 남짓한 기간 중 1도가 오른 것”이라며 “속도가 워낙 빨라, 여기에 가속도가 붙게 되면 제어가 안된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가속도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북극의 영구동토층을 보고 있다. 영구동토층은 현재 대기 중 탄소량의 2배 이상에 해당하는 1조8000억t의 탄소를 품고 있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탄소를 배출하고, 이 탄소가 이산화탄소보다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으로 기화할 수도 있다. IPCC는 2100년까지 영구동토층이 37~81%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수온이 오르자 한때 ‘국민생선’으로 동해를 누비던 명태는 러시아로 귀화했다. 1970년대 연간 어획량이 5만t에 달했던 명태는 2010년대 들어서는 10t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그 결과 국내 수입 명태 중 30% 가량이 러시아산이 됐다. 명절 대표 선물이던 참조기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중국산 부세조기로 대체되고 있다. 국민 생선이 떠나자 동해에는 아열대 어종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독도 해역에서 아열대성 희귀어종 ‘부채꼬리실고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어종은 주로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호주 북부 등 따뜻한 바다에서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에서만 관찰되었는데, 처음으로 독도 해역에서 관찰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위협’ 수준이 된 기후 위기를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한다. 학계에서도 ‘기후위기’로 통용되던 기후변화를 ‘기후재앙’, ‘지구파산’이란 극단적인 용어로 대체하며 빠른 진행 속도를 경계하고 있다.

 

김백민 교수는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면 기온 상승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면서 “여름철 폭염이 40도가 아니라 45도 수준까지 될 수도 있기에 (국민들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빛나 기자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10304000749&ACE_SEAR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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